2009년 6월 3일 수요일

터미네이터 4 와 I'll be back


터미네이터 4를 봤다.
벌 써 4편 씩이나 이야기를 연결해서 이어가야 했다는 점에서, 아무리 상업영화라고 해도,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. 그래서, 마지막 자막이 모두 끝날때까지 자리를 지켰는데, 크레딧이 올라가고 올라가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 만큼의 이름들의 계속되었다. (그래서 배가 산으로 올라갔나?)
난 영화감상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.
터미네이터라는 이름들의 영화들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했다.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내러티브의 구조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했으며, 과연 이러한 노력들은 정당했는가? 그리고 그것들은 관객들은 그들이 의도했던 방식대로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는가? 여기서 연결고리가 있다면, 바로 I'll be back!이 아닐까 싶다.

I'll be back!

나는 이 짧은 한 문장이, 그것도 어눌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액센트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은 이 한마디가, 영화 속에서 어떻게 이야기 구조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. 이때는 꼭 근육질의 주지사가 나오시지 않아도 된다. 이미 우리의 뇌는 아주 친절하게 되어 있어서, 그 누가 말하든지, 그리고 그 상황이 아무리 연관성없는 설정이라하여도 , 오토매틱으로 그 목소리와 그 얼굴의 모습을 떠올리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이다. 이것은 모든 난관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마스터 키인 것이다.
이 말 한마디라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어지는 동시에, 이 간단한 문장속에 이 영화 네편들이 줄줄이 알감자들처럼 따라 올라오는 것이다.

4 편에서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와해해보려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. 이 시대가 어쩌면 가장 확실한 구도를 요구하는 헐리웃에서 조차 이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경향에 편승하는 기류가 흐르고 있음이 감지된다. 죽음으로서 더욱 유명해진 우리의 조커를 보라. 고뇌하는 불확실한 조커를 이 시대가 요구하듯이, 그래서 터미네이터 역시 더이상 기계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. 스토리의 나약함은 굳이 논할 것은 없고, 구성요소들의 빈약함 역시 그러했다.
하지만, 그 상황에서 피식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하나의 코드.
I'll be back!이 잠시나마, 그 영화에대한 비웃음을 , 코메디의 편안한 코드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.

이번 학기 중, '내러티브의 구조' 수업 속에서 , 매시간 우리는 영화속의 다양한 스토리 구조에 대한 공부를 한다.
재현성의 문제, 탈재현성의 문제....등등

하지만 우리는 매주 이루어지는 각각의 수업시간들 역시,
영화의 속편들을 하나의 큰 통일체로 묶을 수 있듯이,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의 구조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.
바로 서현석 교수님의 한마디가 있기 때문이다.
"....., 다시 말해서...."
아마도 이 한마디가 매시간 시간 존재하지 않는다면, 거대한 내러티브 구조가 각각의 수업속에서 완성이 될 수 없을 것이다.
바로 개별의 수업들의 거대한 내러티브의 완성으로 개개인의 뇌속에 이미 프로그램화 되어있기 때문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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